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브라운 (문단 편집) == 상세 == [[소울 음악|소울(Soul)]]이라는 음악 장르를 완성했고, [[R&B]](리듬 앤 블루스)의 유행에도 큰 업적이 있으며 [[펑크(음악)|펑크(Funk)]]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블랙 뮤직에 관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힙합 음악|힙합]]은 1999년도 [[버스타 라임스]], 1986년 아프리카 밤바타를 데리고 앨범을 낸 적이 있으며 50년대 싱글들 가운데 [[재즈]] 곡들도 상당수 있으니 말이다. 후대의 컨템퍼러리 재즈 뮤지션들 조차 인터뷰를 보면 제임스 브라운 거론 안하는 사람이 드물다. 단순히 [[Funk]], [[락 음악]] 뮤지션뿐만이 아니라 블랙뮤직 전반의 존경을 받는다. 예를 들어 힙합 업계의 전설적인 비트 메이커, 프로듀서인 [[갱 스타]]의 [[DJ 프리미어]]도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에서 늘 빼놓지 않고 제임스 브라운을 언급하고 있다. 말 그대로 대중음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흑인 음악 전반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에서 활동한 후대의 어떠한 뮤지션도 브라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본인이 말했듯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워킹을 따라해서 [[문워크]]를 만들었고,[* 문워크는 마이클 잭슨 이전 시대에도 백슬라이드 스텝으로 불리며 많은 댄서가 썼기에 결론적으로 만든 건 아니다.단 제임스 브라운의 스텝을 그의 춤에서 많이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프린스(음악가)|프린스]]의 섹스 어필은 제임스 브라운에게 배운 것일 뿐이다. 실제로 1980년대의 최대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의 음악 스타일은 제임스 브라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프린스도 늘 제임스 브라운에 존경을 표현했다. 특히 그 까칠한 프린스는 제임스 브라운을 만났을때 다급하게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할 정도이다.[* 프린스는 제임스 브라운과 동년배인 [[퀸시 존스]]를 깠을 정도로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호불호가 갈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 프린스가 아주 깍듯이 대한다는 것은 아주, 대단히 존경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힙합 음악]]의 스타일을 만든 것으로도 여겨지고 있는데, 반복되는 리프에 랩처럼 음조가 없는 가사를 주워섬기는 곡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Get Up (I Feel Like Being a) Sex Machine]]''부터가 그런 스타일이다. 심지어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음악 업계 최고의 카멜레온 [[데이빗 보위]]도 제임스 브라운의 영향을 받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와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아티스트'''이기도 하며 그래미 어워드의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드럼 앤 베이스]], [[정글]], [[힙합 음악|힙합]]에선 Funky Drummer 쪽 Riff 과 관련이 있다. 참고로 영화 [[록키 4]]에서 [[드라고]]와 아폴로 크리드의 대결직전에 나온 공연하던 흑인 가수도 제임스 브라운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영화상 특성 때문에 반공 선전물이 되면서 우리나라로 치면 새마을 운동가같은 노래를 부른 꼴이 되었다. 2006년 2월경에 한국에서 역사적인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잠실의 작은 실내체육관에서 열렸으며, 게다가 객석은 모두 좌석으로 이루어졌다. 정작 공연 시엔 앉아서 보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지만. 그러나 고령의 나이 때문인지, 브라운 본인의 퍼포먼스는 공연의 절반 정도만 채우는데 그쳤다. 관객수는 3천여 명. 그리고 같은 해인 2006년 성탄절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그의 장례식은 관이 열린 상태로 진행되는 '오픈 캐스킷' 장례로 진행되었는데, 마이클 잭슨은 그 장례식에 방문해서 그의 시신에 작별의 키스를 하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며, 개인적으로도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사망하였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는 노래뿐만 아니라 [[https://youtu.be/gfCatHU4PhM|춤]][[https://youtu.be/Zdz88MBWomo|도]][* 흘러나오는 곡은 james brown - if you don't give a doggone about it] 당대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위에서도 볼 수 있듯 마이클 잭슨은 그의 발놀림에서 모티브를 따와 안무 동작을 짰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이 직접 그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사람 중 한명이다.(나머지 두명은 프리드 아스테어와 밥 파시) 어마어마한 음악적 재능과는 별개로 평소 성격이 굉장히 빡세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를 존경하는 후배 프린스도 성격이 까칠하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하지만 제임스 브라운보다는 덜하다고 한다. 후배들과 공연할 일이 생기면 그가 생각하는 컷은 엄청나게 높아서 무대에 서는 가수와 스태프들 모두가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잘 다독여주고 채찍과 당근을 잘 주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백밴드가 실수를 하거나 자유로운 행태를 보일 시 '''때려서''' 내쫓았다고 하니.[* 제임스 브라운의 성격은 개차반이었던 것은 유명한데 백밴드가 본인이 원하는 연주를 하지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엄청난 벌금을 물리거나 개패듯이 패가지고 쫓아냈는데 그 유명한 [[지미 헨드릭스]]도 유명해지기 전에 이 백밴드에 잠시 소속되어있었는데 그 자유분방한 성격과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찍혔고 제임스에게 맞고 쫓겨났다. 후에 소위 1977년 9월 29일 사건이라고 불리는 일이 생긴 후로는 백밴드들이 집단 탈퇴를 하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자 이 성향을 고치긴 했다. 이 성격은 본인의 실수에도 예외가 아니라 본인이 리허설이건 본무대건 실수하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화가 났다고 한다.] 또한 음악적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였다고 하며, 실제로 그가 음악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히트곡만 100곡이 넘고, 후배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제임스 브라운의 경이로운 커리어를 생각하면 충분히 말년을 여유있게 보낼 법도 한데, 가능한 한 각종 공연과 투어를 계속해서 다니며 무대에 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자신이 벌어온 돈을 생각하면 굳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것은 맞으나 본인은 소울의 대부라는 별명에 엄청난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별명이 내가 음악을 해왔고 음악을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라고 믿기에 계속 무대에 서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무대에 설 때가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하며, 사람들에게 롤모델을 제시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죽을 때까지 공연할 거라고 발언했다. 실제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무대에 서며 이를 지켰다. 영화에 자주 나왔다. [[블루스 브라더스]](사람 만들기), 록키 4에 출연했으며 이외에도 출연 영화들이 꽤나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